옛날 책에는 왜 금속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을까?
중세 필사본이나 오래된 가죽 장정 책을 보면 가끔 낯선 물건이 붙어 있다.
책 표지 가장자리에서 튀어나온 금속판.
가죽끈 끝에 달린 작은 걸쇠.
반대편 표지에는 그것을 걸어 잠그는 금속 장치가 있다.
오늘날 책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처음 보면 귀중한 책을 누가 몰래 읽지 못하도록 잠그는 자물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목적은 조금 달랐다.
이 장치는 책을 ‘비밀스럽게 잠그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책이 스스로 벌어지지 않게 붙잡아두기 위한 장치였다.

옛날 책은 닫아두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현대 책은 대부분 종이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중세 유럽의 많은 필사본은 종이보다 **양피지(parchment)**를 사용했다.
양피지는 동물가죽을 가공해 만든 재료다.
튼튼하고 오래 보존될 수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공기 중의 수분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습도가 달라지면 수분을 받아들이거나 내보내면서 크기와 형태가 변할 수 있다.
평평하던 양피지가 물결치듯 휘기도 하고, 가장자리가 들리기도 하며, 심하면 책 전체가 벌어지는 힘을 만들 수 있다.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는 양피지가 상대습도 변화에 특히 민감하고, 수분에 노출되면 심하게 변형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 보존환경에서도 까다로운 재료인데, 냉난방과 습도조절 장치가 없던 시대에는 변화가 훨씬 컸을 것이다.
그래서 책 자체를 작은 ‘압착기’처럼 만들었다
중세 책의 표지가 두껍고 무거운 이유도 여기와 연결된다.
본문 양쪽에 얇은 종이표지를 붙인 것이 아니라 두꺼운 나무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이에 양피지 본문을 놓고, 책을 닫은 다음, 가죽 스트랩과 금속 clasp로 양쪽 표지를 서로 잡아당겨 고정했다.
Library of Congress의 보존전문가는 이런 중세식 잠금장치를 설명하면서, 닫힌 책 자체가 일종의 press, 즉 압착장치처럼 작용해 양피지 본문이 심하게 cockling되는 것을 억제했다고 표현한다.
책장이 벌어지려고 해도 무거운 나무판과 잠금장치가 계속 눌러주는 구조다.
갑자기 금속 걸쇠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장식이 아니라 책의 형태를 유지하는 기계장치였던 것이다.

금속이 책을 보호한다니 조금 이상하다
보존 이야기에서는 보통 금속이 종이와 직접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중세 책에는 왜 굳이 금속을 붙였을까?
잠금장치는 반복해서 열고 닫아야 한다.
가죽끈만 걸어두면 마찰과 당기는 힘을 받는 끝부분이 빨리 닳을 수 있다.
그래서 clasp와 catch 같은 부분에 금속을 사용해 반복적인 사용을 견디게 했다.
실제 중세 book clasp 유물에는 금속판과 함께 그것을 고정했던 리벳 구멍, 가죽 스트랩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구조는 책마다 달랐다.
간단한 금속 후크를 걸기도 했고, 가죽 스트랩 끝에 금속 clasp를 달기도 했으며, 더 화려한 책에는 장식적인 금속장식이 함께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모든 책의 잠금장치가 똑같은 모습은 아니다.
금속장식이 모두 ‘잠금장치’인 것도 아니다
오래된 책 표지에는 금속이 꽤 많이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모서리를 감싼 금속판도 있고, 표지 한가운데 혹은 여러 곳에 둥글게 솟은 금속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clasp라고 부르면 안 된다.
책을 실제로 닫아주는 것이 clasp라면, 표면에 돌출된 금속 장식은 boss인 경우가 있다.
boss는 특히 책을 눕혀 보관하던 환경에서 표지의 가죽이나 장식이 바닥과 직접 마찰하는 것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모서리 금속장식은 표지판의 취약한 가장자리를 보호하는 기능을 겸할 수 있었다.
즉 중세 책의 금속 부품은 하나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다.
닫고, 받치고, 모서리를 보호하고, 때로는 책의 위엄을 보여주는 장식까지 맡았다.
책 한 권이 작은 가구처럼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책이 종이로 바뀌었는데도 clasp가 남은 이유
유럽에서 종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종이는 양피지와 성질이 다르다.
그렇다고 책의 잠금장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미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제본 방식이었고, 무겁고 두꺼운 책을 단단히 닫아두는 기능 자체도 여전히 유용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clasp는 실용적인 구조이면서 동시에 고급 제본의 외형을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기능으로 시작한 것이 장식과 전통으로 이어진 것이다.
책등의 raised band가 실제 제본끈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장식만 남기도 했던 것과 비슷한 변화다.
다만 모든 시대와 지역의 clasp를 하나의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다.
책의 재료와 크기, 제본 전통, 사용 목적에 따라 기능과 형태가 달랐다.
오래된 책을 보면 clasp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중세 책을 보면 이상한 흔적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표지 가장자리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있다.
금속판이 있었던 것처럼 색이 다른 자국도 있다.
가죽끈이 잘려나간 흔적만 남아 있기도 한다.
이런 책은 원래 clasp가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부품을 잃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British Library가 소장한 한 중세 필사본에는 원래 두 개의 clasp가 있었지만 현재는 그것을 고정했던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금속 부품은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반복적인 사용에서 충격을 받기 쉽다.
스트랩은 계속 구부러지고 잡아당겨진다.
결국 책 본체보다 먼저 사라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금 clasp가 없는 책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표지의 구멍과 마모 흔적이 사라진 부품의 존재를 알려주기도 한다.
사라진 clasp를 새것으로 만들어 붙이면 될까?
여기서 복원 문제가 등장한다.
원래 잠금장치가 사라졌으니 똑같이 생긴 새 금속장치를 만들어 붙이면 더 완벽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존은 단순히 빈자리를 모두 채우는 일이 아니다.
어떤 형태였는지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 현재 책에 구조적인 도움이 필요한지, 새로운 금속과 스트랩을 달기 위해 원래 표지에 추가 구멍을 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현대의 보존환경에서는 책 크기에 맞는 보존상자가 과거 clasp가 맡았던 보호 기능 가운데 일부를 대신할 수도 있다.
Library of Congress의 한 중세식 제본 복원 프로젝트에서도 원래라면 closure를 둘 수 있는 구조였지만, 책을 보존상자에 넣어 안정적으로 보관할 예정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잠금장치를 추가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과거와 똑같이 만드는 것이 언제나 가장 좋은 보존은 아닌 것이다.
자물쇠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책을 붙잡고 있었다
금속 clasp를 처음 보면 보안을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책의 재료 특성이 숨어 있다.
양피지는 습도에 따라 움직였다.
두꺼운 나무표지는 본문을 눌러줬다.
가죽 스트랩과 금속 clasp는 두 표지를 서로 당겨 닫았다.
그렇게 책은 스스로의 형태를 유지했다.
생각해보면 꽤 독특하다.
오늘날 책의 표지는 주로 내용물을 보호하는 외피다.
중세의 어떤 책에서는 표지와 금속장치가 본문의 형태를 물리적으로 통제하는 구조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낡은 책에 달린 작은 금속 걸쇠를 단순한 장식으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한때 책을 닫아두는 손이었다.
수백 장의 양피지가 움직이려 할 때, 두꺼운 나무판을 붙잡아 책의 형태를 유지하던 작은 장치였다.
옛날 책의 clasp는 책을 잠근 것이 아니라, 책 자체를 붙잡고 있었다.
REFERENCES
Library of Congress
Good Wood: Using Beech to Rebind a Medieval Manuscript
Library of Congress
Preservation Matting for Works of Art on Paper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Basic Care of Books
British Library
Archives and Manuscripts Catalogue — Add MS 61823
University of Oxford, Bodleian Libraries
Guide to University Arms
voucher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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