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등은 왜 가장 먼저 망가질까? 오래된 책을 옆에서 보면 보이는 것들
책장에서 오래된 책을 한 권 꺼내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앞표지도 아니고 종이도 아니다.
책등이다.
색이 벗겨져 있거나 위쪽이 뜯겨 있고, 표지와 책등이 만나는 선을 따라 가느다란 균열이 생긴 책이 꽤 많다.
조금 심한 책은 표지를 열었을 때 앞표지가 덜렁거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생각이 든다.
오래됐으니까 책등부터 낡은 것 아닐까?
그런데 책을 옆에서 들여다보면 이유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책은 가만히 있는 물건이 아니다
책장에 꽂혀 있을 때 책은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펼치는 순간 꽤 복잡하게 움직인다.
표지가 벌어지고,
책등 주변의 재료가 휘고,
실로 묶인 종이 묶음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페이지가 열린다.
다시 책을 덮으면 이 모든 것이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우리가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이 움직임이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된다.
그래서 책은 박물관에 놓인 도자기와 조금 다르다.
사용하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하는 구조물이다.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도 책을 거의 항상 움직이도록 설계된 구조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특히 많이 집중되는 곳이 책등 주변이다.
표지와 책등 사이의 가느다란 선
오래된 양장본을 옆에서 보면 책등과 앞뒤 표지 사이에 세로로 길게 이어진 부분이 보인다.
이곳을 보통 **조인트(Joint)**라고 한다.
책을 열 때마다 표지는 이 부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밖에서는 가죽이나 천이 접혔다 펴지고, 안쪽에서는 면지와 제본 구조가 함께 힘을 받는다.

이 부분이 멀쩡할 때는 별일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재료가 오랜 시간 건조해지거나 약해지고, 수없이 책을 열고 닫는 힘이 반복되면 작은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균열이 커지면 표지와 본문을 연결하는 구조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오래된 책을 볼 때 책등의 겉모습만 보는 것보다 표지를 아주 조금 열어 연결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준다.
억지로 크게 펼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책을 180도로 펼치는 순간
사진을 찍거나 책의 가운데 부분을 읽다 보면 책을 책상 위에 완전히 눌러 펼치고 싶어진다.
새 책이라면 별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다.
오래된 책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많은 제본은 애초에 완전히 평평하게 펼쳐지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책을 180도로 눌러 펼치면 책등과 조인트에 원래 구조가 허용하는 것보다 큰 힘이 걸릴 수 있다.

미 의회도서관과 CCI 모두 오래된 책을 다룰 때 책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각도를 존중하고, 필요하면 받침을 사용하도록 안내한다.
실제 오래된 책을 보다 보면 이 말이 금방 이해된다.
어떤 책은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아도 넓게 열린다.
반면 어떤 책은 절반 정도만 열어도 책등에서 뻣뻣한 저항이 느껴진다.
그때 더 세게 누르는 것은 책을 ‘잘 펼치는 것’이 아니라 제본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책장에서 꺼내는 습관도 흔적을 남긴다
책등 위쪽만 유난히 뜯어진 책도 자주 보인다.
왜 꼭 그곳일까?
책장에서 책을 꺼낼 때 무심코 하는 행동을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검지손가락을 책등 맨 위에 걸고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는 동작이다.
편하다.
아마 한 번쯤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힘이 집중되는 부분이 책등 위쪽의 **헤드캡(Headcap)**이다.
오래되고 약해진 가죽이나 천이라면 이 작은 동작이 반복되면서 찢어질 수 있다.

그래서 보존기관에서는 주변 책을 조금 뒤로 밀어 공간을 만든 뒤 책의 양쪽이나 책등 중앙을 안정적으로 잡아 꺼내는 방법을 권한다.
별것 아닌 차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반복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책에 남은 손상 중에는 큰 사고보다 아주 작은 습관이 수천 번 반복되어 만들어진 것도 많다.
떨어진 책등을 그냥 붙이면 안 될까?
책등 일부가 떨어져 있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방법이 있다.
풀을 바르고 다시 붙이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가장 간단하다.
문제는 책등이 단순한 장식용 덮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책의 시대와 제본방식에 따라 구조가 다르고, 표지와 본문이 연결되는 방법도 다르다.
겉에서 떨어진 조각만 다시 붙였는데 실제로는 안쪽 구조가 이미 끊어져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움직여야 할 부분을 강한 접착제로 고정해버리면 책을 펼칠 때 새로운 곳에 힘이 집중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역사적인 책의 부러진 조인트나 떨어진 표지를 일반 테이프나 강한 접착제로 임의 수선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CCI는 보존처리를 기다리는 손상된 책이라면 오히려 적절한 보존용 상자에 넣거나, 상황에 따라 부드러운 면 테이프로 책과 떨어진 표지를 함께 지지하는 임시 보호방법을 제시한다.
고치는 것보다 더 망가지지 않게 붙잡아두는 것이 먼저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다음에 오래된 책을 보면 옆면부터 보게 된다
예전에는 책을 펼치면 내용부터 봤다.
하지만 책의 구조를 조금 알고 나면 시선이 달라진다.
책등 위쪽은 뜯기지 않았는지,
표지와 책등 사이에 균열이 있는지,
책을 열었을 때 어느 정도 각도에서 자연스럽게 멈추는지,
표지가 본문과 제대로 연결되어 있는지가 눈에 들어온다.
책등이 가장 먼저 망가지는 것은 그 부분이 단순히 약해서만은 아니다.
책이 책으로 기능하기 위해 가장 많이 움직여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책을 이해하려면 종이만 봐서는 부족하다.
그 종이를 어떤 방식으로 묶었고, 표지와 어떻게 연결했는지도 봐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수백 장의 종이를 실 몇 가닥으로 묶은 책이 어떻게 몇백 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책을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봐야 한다.
접혀 있는 종이 묶음과 실, 그리고 우리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제본의 안쪽 구조로 들어가야 한다.
REFERENCE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Basic Care of Books
Library of Congress
Preserving Your Books — Handling Your Books
Library of Congress
Preserving Your Books — Repairing Your Books
voucher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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