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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 한 권을 지키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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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정리하다 오래된 책 한 권이 나왔다고 생각해 보자.

표지는 닳아 있고 책등은 조금 벌어져 있다.

종이는 누렇고 군데군데 갈색 반점도 보인다. 몇 페이지에는 작은 벌레구멍이 있고, 책을 펼치면 오래된 종이 특유의 냄새도 난다.

이쯤 되면 하고 싶은 일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먼지를 털고, 찢어진 곳을 붙이고, 얼룩을 닦고, 가죽에는 뭔가 발라주고, 비닐에 싸서 안전한 곳에 넣어두고 싶어진다.

그런데 지금까지 오래된 책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알게 된 것은 조금 의외였다.

고서를 지키는 첫 번째 행동은 대부분 ‘고치는 것’이 아니었다.

낡은 가죽 표지와 황변한 종이, 작은 얼룩과 사용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된 고서 한 권을 작업대에서 처음 살펴보는 모습

먼저 책을 그대로 본다

찢어진 페이지가 보여도 일단 붙이지 않는다.

책등이 떨어져 있어도 접착제를 찾지 않는다.

갈색 얼룩이 있다고 닦지도 않는다.

먼저 현재 상태를 본다.

표지는 본문과 연결되어 있는지.

페이지를 넘길 때 종이가 부서지는지.

곰팡이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지.

새로운 벌레가 움직이거나 가루가 떨어지는지.

물이 젖었던 흔적은 없는지.

과거에 누군가 테이프나 풀로 고친 흔적은 없는지.

가능하면 앞표지와 뒷표지, 책등, 손상 부위를 사진으로 남겨두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해두면 몇 달 뒤 상태가 달라졌는지도 비교할 수 있다.

보존전문가들이 처리 전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손을 대기 전의 상태는 한번 바꾸고 나면 다시 돌아가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진행 중인 문제’다

오래된 책에는 흔적이 많다.

그런데 모든 흔적이 똑같이 급한 것은 아니다.

100년 전에 생긴 물 얼룩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오늘도 책 아래로 벌레가 갉아낸 가루가 떨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래된 폭싱 반점과 현재 자라고 있는 곰팡이도 마찬가지다.

조금 닳은 가죽 표지와 만질 때마다 붉은 가루가 떨어지는 레드 로트도 다르다.

그래서 책을 보면서 먼저 구별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이 손상은 과거의 흔적인가, 아니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가?

현재 진행 중인 곰팡이와 충해, 누수와 높은 습도 같은 문제라면 먼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얼룩을 지우는 것보다 책장이 젖고 있는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벌레구멍을 메우는 것보다 주변 책에서도 새로운 충해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오래된 책의 책등과 페이지 가장자리, 벌레구멍과 얼룩 등을 확대경으로 차분하게 확인하며 현재 진행 중인 손상이 있는지 조사하는 모습

의외로 많은 문제는 책 밖에서 시작된다

책을 오래 보존하려면 자꾸 책 자체만 보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책 주변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책장이 외벽에 바짝 붙어 있는지.

습기가 많은 지하실이나 창고에 보관하고 있지는 않은지.

직사광선이 매일 같은 자리에 들어오는지.

책들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커다란 책이 자기 무게를 견디며 세워져 있는지.

먼지와 음식물이 쌓여 해충이 머물기 좋은 환경은 아닌지도 살펴볼 수 있다.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가 말하는 **예방적 보존(Preventive Conservation)**도 이런 접근에 가깝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손상을 일으키는 위험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화려하지는 않다.

사진으로 찍어도 복원 전후의 극적인 변화가 없다.

하지만 책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관리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잘 보관하는 것이 하나의 ‘처리’가 되기도 한다

책등이 약해진 책이 있다고 해보자.

당장 새 책등을 만들어 붙이지 않아도 된다.

책 크기에 맞는 보존용 상자에 넣으면 옆 책과 마찰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떨어져 나온 작은 가죽 조각도 잃어버리지 않고 함께 보관할 수 있다.

책이 너무 무거우면 세워놓는 대신 평평하게 눕힐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조금밖에 열리지 않는 책이라면 억지로 180도로 펼치지 않는 것도 보존이다.

선하지 않은 오래된 고서를 크기에 맞는 보존용 상자와 안정적인 지지재로 안전하게 보호한 모습

이런 방법은 뭔가를 ‘복원했다’는 느낌이 거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이가 생긴다.

책등을 잡아당기는 횟수가 줄고, 표지의 마찰이 줄고, 먼지와 빛에 직접 노출되는 정도도 줄어든다.

고서 보존에서 상자와 받침, 올바른 취급법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결정이다

여기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 하나 남는다.

아무 처리도 하지 않는 것.

미국 보존전문가협회(AIC)의 윤리 지침에는 보존을 위해 비개입이 더 적절하다면 아무 처리도 하지 않는 것을 권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처리를 하지 않는다고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살펴본 뒤 내린 결정일 수 있다.

책이 안정적이고, 내용을 읽는 데 문제가 없고, 현재 진행되는 손상도 없으며, 적극적인 처리가 오히려 원래 재료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방치’와 ‘비개입’은 완전히 달라진다.

방치는 상태를 모른 채 내버려두는 것이다.

비개입은 상태를 알고도 지금은 손대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복원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

지금까지 여러 가지 복원재료와 처리방법을 살펴봤다.

얇은 일본 종이도 있었고, 밀전분풀도 있었다.

탈산처리도 있었고, 화재로 손상된 책을 세척하고 종이섬유로 보강하는 대규모 복원도 있었다.

그런데 모든 글에서 이상할 정도로 반복된 과정이 하나 있다.

먼저 본다.

책등이 망가졌을 때도 그랬다.

폭싱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벌레구멍이 생겼을 때도 그랬다.

가죽에서 붉은 가루가 떨어질 때도 그랬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한 뒤에야 다음 행동을 정했다.

고서복원을 특별한 기술의 집합으로만 보면 이 과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된 책을 실제로 오래 남기려면 무엇을 붙이는 기술보다 언제 붙이지 않아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먼저 필요하다.

책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고칠 필요는 없다

새 책에서는 얼룩과 긁힘이 결점처럼 보인다.

오래된 책에서는 조금 다르다.

닳은 모서리는 누군가 반복해서 책을 읽었다는 흔적일 수 있다.

여백의 메모는 과거 소장자의 기록일 수 있다.

다시 제본한 흔적도 그 책이 살아남아 온 과정의 일부다.

심지어 작은 물 얼룩 하나에도 오래전 보관환경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다.

그것들을 전부 지우고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되돌리는 것이 항상 좋은 복원은 아니다.

어떤 흔적은 지켜야 한다.

어떤 손상은 안정시켜야 한다.

어떤 것은 그대로 두어도 된다.

그리고 어떤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손대지 않는 편이 낫다.

이 구분을 하기 시작하면 오래된 책을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

결국 오래 남기는 일이었다

처음 고서복원에 대해 생각했을 때는 낡은 책을 다시 깨끗하게 만드는 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스무 편의 이야기를 따라오면서 복원은 점점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더 하얗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더 단단하게 붙이는 일도 아니었다.

모든 상처를 없애는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세척하고, 때로는 보강하고, 때로는 상자에 넣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방법은 계속 달라졌다.

하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을 다음 시간까지 남기는 것.

보존용 상자에 안전하게 놓인 오래된 고서와 정돈된 희귀본 서가가 함께 보이는 조용한 보존공간

오래된 책을 지킨다는 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지나갈 시간을 준비하는 일에 더 가깝다.

그러니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둘러 복원방법을 검색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책을 놓고 천천히 살펴보는 것.

무엇이 단순한 흔적이고 무엇이 실제 위험인지 구별하는 것.

그리고 지금 꼭 필요한 행동만 선택하는 것.

고서 보존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REFERENCES

American Institute for Conservation
Code of Ethics and Guidelines for Practice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Basic Care of Book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Preventive Conservation Guidelines for Collection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Conservation Treatments

Library of Congress
Preserving Your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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