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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가는 어디까지 고치고 어디에서 멈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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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 한 권이 있다.

앞표지는 거의 떨어져 있고, 책등 가죽은 군데군데 사라졌다. 한쪽 모서리는 뜯겨나갔고 페이지에는 누군가 연필로 남긴 메모가 있다.

얼룩도 보인다.

이 책을 복원한다면 어디까지 고쳐야 할까?

떨어진 표지는 붙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없어진 책등도 새로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찢어진 모서리도 채워 넣고, 얼룩도 없애고, 낙서까지 지우면 훨씬 깨끗해진다.

그렇게 하면 새 책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복원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시작된다.

깨끗해진 책과 잘 보존된 책은 반드시 같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지가 일부 떨어지고 책등과 종이 가장자리에 손상이 있으며 오래된 필기 흔적까지 남아 있는 고서 한 권

손상처럼 보이는 것이 모두 없애야 할 것은 아니다

페이지 한쪽에 연필로 이름이 적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는 낙서처럼 보인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150년 전 이 책을 소장했던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다.

책에 찍힌 도장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지저분한 흔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느 도서관이나 개인의 장서를 거쳐왔는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제본도 그렇다.

처음 책이 만들어졌을 때의 제본은 이미 사라졌고 100년 전에 누군가 다시 제본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복원하면서 100년 전 제본을 없애고 더 오래된 모습을 추정해 만들어야 할까?

갑자기 ‘원래 상태’라는 말이 애매해진다.

책은 만들어진 순간 그대로 멈춰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읽히고,

옮겨지고,

수선되고,

다시 제본되면서 시간이 계속 겹쳐진다.

그래서 보존전문가는 손상만 찾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에 정보가 남아 있는지도 함께 살핀다.

복원은 먼저 사진을 찍는 데서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전문적인 보존처리에서는 무언가를 떼어내거나 붙이기 전에 기록부터 남긴다.

책의 앞면과 뒷면.

책등.

표지 안쪽.

손상된 페이지.

과거 수선의 흔적.

필요하면 사진을 찍고 글로 상태를 기록한다.

보존처리를 시작하기 전 오래된 고서의 표지와 책등, 손상 부분을 촬영하고 상태를 기록하는 모습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한번 처리하면 처리 전의 상태로 돌아가 직접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American Institute for Conservation(AIC)의 보존 윤리 지침에서도 처리 전에 대상의 재료와 구조, 상태와 관련 이력을 조사하고 기록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 처리 계획을 세운다.

무엇을 할 것인지뿐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생각한다.

그러니 복원가의 첫 번째 기술은 손재주가 아닐지도 모른다.

보고, 판단하고, 기록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

없어진 부분을 새로 만들어도 될까?

책의 한쪽 모서리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보자.

새 종이를 붙이면 형태를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없어진 부분에 원래 어떤 글자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상상해서 글자까지 다시 넣어야 할까?

보존에서는 이런 부분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룬다.

AIC 지침에서는 없어진 부분을 보완할 때 그 처리가 원래 자료의 알려진 특징을 거짓으로 바꾸거나 원본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종이가 없어진 부분을 구조적으로 보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그림이나 글씨를 임의로 만들어 넣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복원된 부분을 가까이에서 조사했을 때 원본과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생각 중 하나다.

복원은 과거를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룩은 어디까지 지워야 할까?

오래된 책의 얼룩도 비슷하다.

얼룩이 있으면 없애고 싶어진다.

특히 전시되는 책이라면 깨끗한 모습이 더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얼룩 하나를 없애기 위해 종이에 강한 처리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얼룩은 줄어들지만 종이가 약해질 수도 있다.

잉크가 변할 수도 있다.

앞으로 이루어질 다른 분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면 선택지가 생긴다.

얼룩을 최대한 지울 것인가.

조금 남더라도 종이에 부담을 덜 줄 것인가.

아예 처리하지 않을 것인가.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는 보존처리가 최소한의 안정화에서 보다 적극적인 복원까지 다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항상 같은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의 가치와 용도, 재료와 손상상태에 따라 목표가 달라진다.

여기에서 복원의 특징이 드러난다.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정일 수도 있다

이 말이 처음에는 가장 이상하게 들린다.

손상된 책이 있는데 왜 복원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책을 생각해보자.

표지가 조금 닳았지만 구조적으로 안정적이다.

종이도 잘 넘어간다.

전시하거나 자주 열어볼 책도 아니다.

그 상태에서 적극적인 세척과 재제본을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

미 의회도서관은 가치가 있는 책이라도 사용 빈도가 낮고 상태가 안정적이라면 그대로 두고 적절한 상자에 보관하면서 환경을 개선하는 선택을 고려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AIC의 윤리 지침에는 더 직접적인 표현도 있다.

아무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 문화재의 보존에 가장 도움이 된다면 비개입을 권할 수 있다.

낡은 흔적과 일부 손상을 그대로 유지한 오래된 고서를 무리하게 복원하지 않고 크기에 맞는 보존용 상자에 안정적으로 보관한 모습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방치한다는 뜻이 아니다.

상태를 기록하고,

적절하게 보관하고,

환경을 관리하고,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한다.

직접적인 복원처리만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어려운 선택일 수도 있다.

눈앞의 손상을 보면 무엇인가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새것처럼 만들 수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

오래된 책을 복원한 전후 사진을 보면 극적인 변화가 눈에 잘 들어온다.

찢어진 표지가 다시 붙고,

구겨진 종이가 펴지고,

책의 형태도 반듯해진다.

그래서 복원이라는 일을 ‘얼마나 새것처럼 만들었는가’로 평가하기 쉽다.

하지만 좋은 보존처리가 언제나 화려한 전후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처리한 뒤에도 얼룩이 남는다.

닳은 가죽도 남는다.

없어진 부분 역시 완전히 감춰지지 않는다.

그 대신 책장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고, 떨어져 나가던 부분이 안정되고, 다음 사람이 다시 조사하거나 보존처리할 가능성이 남는다.

그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다.

이쯤 되면 복원가가 하는 일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무엇이든 원래대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까지 손대고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사람.

기술이 좋을수록 더 많이 고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더 적게 고칠 줄 아는 것이 중요해진다.

오래된 책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손을 댔다.

누군가는 읽었고,

누군가는 메모했고,

누군가는 표지를 고쳤고,

누군가는 도장을 찍었다.

복원가의 손도 결국 그 긴 역사에 추가되는 또 하나의 손이다.

그래서 그 흔적은 가능한 한 신중해야 한다.

복원은 시간을 지우는 작업이 아니라, 다음 시간까지 책을 넘겨주는 작업에 더 가깝다.

REFERENCES

American Institute for Conservation
Code of Ethics and Guidelines for Practice

Library of Congress
Preserving Your Books — Repairing Your Books

Library of Congress
Digital Imaging Workflow for Treatment Documentation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Conservation Treat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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