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가는 왜 책을 고치기 전에 사진부터 찍을까?
복원 전후 사진을 보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지막 사진으로 간다.
찢어졌던 종이가 이어지고,
떨어졌던 표지가 안정되고,
구겨졌던 페이지가 다시 자리를 잡은 모습.
변화가 크면 클수록 복원이 잘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실제 보존처리에서 더 중요한 사진은 어쩌면 그 반대쪽에 있다.
아직 아무것도 고치지 않은 책의 사진이다.
복원가는 왜 손을 대기도 전에 책을 여러 방향에서 촬영할까?
단순히 ‘작업 전 모습’을 남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한번 고치고 나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오래된 책의 표지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안쪽을 들여다보니 실과 천 조각, 오래된 접착제 흔적이 보인다.
누군가는 그것을 지저분한 잔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존가에게는 정보다.
어떤 방식으로 제본했는지,
이전에 수선한 적이 있는지,
어떤 재료가 사용됐는지를 추정할 단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복원을 시작하면 이런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떨어진 부분을 다시 붙이고 새로운 보강재를 넣으면 처리 전의 모습은 실제 물건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먼저 사진을 남긴다.
표지 전체를 찍고,
책등을 찍고,
손상된 부분은 가까이 찍는다.
필요하다면 옆에서 빛을 비추거나 확대해서 촬영한다.
사진 한 장이 그 순간의 상태를 붙잡아두는 셈이다.
American Institute for Conservation의 보존 윤리 지침에서도 처리 전에 대상의 구조와 재료, 상태와 관련 이력을 조사하고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그 기록의 중요한 일부다.
사진을 찍으면 눈으로 못 보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보존사진이라고 해서 항상 정면에서 밝게 찍는 것은 아니다.
빛을 어느 방향에서 비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나타날 수 있다.
옆에서 낮게 빛을 비추는 **사광(Raking light)**을 사용하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종이의 주름과 눌린 자국, 변형이 훨씬 뚜렷하게 보인다.
자외선이나 적외선 촬영 같은 전문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카메라는 기록용 장비라기보다 조사도구에 가까워진다.
실제로 미 의회도서관이 알브레히트 뒤러의 유명한 판화 《코뿔소(Rhinoceros)》를 조사했을 때도 여러 종류의 촬영기법이 사용됐다.
작품 뒷면에는 과거에 찍힌 도장이 있었다.
문제는 이 도장의 잉크가 습식 보존처리를 견딜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적외선으로 관찰했을 때 이 잉크가 적외선을 투과하는 특성을 보였고, 보존가는 이를 통해 염료계 잉크일 가능성과 물에 민감할 가능성을 예상했다.
사진이 단순히 상태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처리를 선택할 것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처리 전’과 ‘처리 후’ 사진은 같은 조건으로 찍는다
복원 전에는 가까이 찍고 복원 후에는 멀리서 찍는다면 어떨까?
사진은 멋있을지 몰라도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보존사진에서는 가능하면 처리 전과 처리 후를 비슷한 조건에서 촬영한다.
카메라 위치.
조명.
대상의 방향.
촬영 범위.
이런 조건을 맞추면 무엇이 변했는지를 훨씬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 의회도서관은 보존처리 사진을 위한 별도의 Digital Imaging Workflow까지 운영한다.
그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처리 전후를 비교할 수 있는 영구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복원 전후 사진은 꼭 극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처리 후 사진을 봤는데 얼핏 보기에는 거의 똑같을 수도 있다.
책등 안쪽을 보강했거나, 떨어지려던 종이 조각을 안정화했거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구조를 보수했다면 외관 변화는 크지 않다.
그래도 기록은 필요하다.
보존은 사진발이 잘 받는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업 중간에도 사진을 찍는다
처리 전.
처리 후.
두 장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 실제 작업에서는 중간 사진도 중요할 수 있다.
책을 분해했더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구조가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자.
책등 안쪽에서 오래된 종이 조각이 발견될 수도 있고,
과거 수선 흔적이 나올 수도 있다.
다시 제본하면 그 부분은 또 보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록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일 수 있다.

AIC 지침에서도 처리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정보와 사용한 재료, 처리방법 등을 기록하도록 한다.
사진 한 장만 남겨놓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무슨 처리를 했는지,
어느 부분을 변경했는지도 글로 함께 남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20년 뒤 누군가 이 책을 다시 보존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는 지금의 복원도 이미 ‘과거의 수선’이 된다.
복원사진은 미래의 복원가에게 보내는 편지와 비슷하다
이 점이 가장 흥미롭다.
지금 찍은 사진을 현재의 복원가만 보는 것이 아니다.
몇십 년 뒤 다른 보존가가 같은 책을 펼칠 수 있다.
그때 새로운 접착제와 보강지가 발견된다.
왜 붙였는지 모른다면 다시 처음부터 추측해야 한다.
하지만 기록이 남아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6년에 이 부분이 찢어져 있었다.”
“이전 수선재를 제거했다.”
“이 재료로 보강했다.”
“처리 후에는 이런 상태였다.”
시간을 건너 정보가 전달된다.
그래서 보존 기록은 단순한 작업일지가 아니다.
책의 역사에 새로운 한 장을 추가하는 기록이다.
문화재 보존에서는 처리기록 역시 그 자료의 역사 일부로 보존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 한 장에도 ‘있는 그대로’가 중요하다
보존사진에는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이 있다.
예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얼룩을 포토샵으로 지우거나,
손상된 부분을 보기 좋게 정리하거나,
색을 실제보다 선명하게 바꾸면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사진 속의 책은 가능한 한 그 순간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줘야 한다.
멋진 사진보다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필요하다.
이것은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대표 이미지와도 성격이 다르다.
대표 이미지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시각자료가 될 수 있지만,
보존처리 사진은 증거에 가깝다.
그래서 복원은 카메라 앞에서 시작한다
오래된 책을 복원한다고 하면 붓과 핀셋, 얇은 보수지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 순서는 조금 다르다.
먼저 책을 본다.
기록한다.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다음에야 손을 댄다.
복원 전 사진 한 장에는 그 책이 마지막으로 아무 처리도 받지 않았던 순간이 남는다.
복원이 끝나면 다시는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도 보존처리의 일부다.
어쩌면 복원가는 책을 고치는 사람인 동시에,
책이 변하는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책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오래된 책을 펼치면 종이가 한 장씩 책등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장의 종이를 접어 묶고, 그 묶음을 실로 이어 만든 책이 많다.
풀보다 실이 먼저 책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수백 장의 종이를 실 몇 가닥으로 묶은 책이 어떻게 수백 년을 버틸 수 있었는지, 다음 글에서 제본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REFERENCES
American Institute for Conservation
Code of Ethics and Guidelines for Practice
Library of Congress
Digital Imaging Workflow for Treatment Documentation
Library of Congress
Conservation Photodocumentation at the Library of Congress
Library of Congress
Technical Examination and Conservation of Dürer’s Rhinocero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The Salzinnes Antiphonal — Conservation Treatment of the Textblock
vouchermate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