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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수백만 권의 산성 종이를 어떻게 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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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에 책이 몇 권 있다면 상태가 나쁜 책부터 하나씩 복원하면 된다.

그런데 책이 수백만 권이라면 어떨까.

그중 상당수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고, 비슷한 산성 종이를 사용했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오늘은 멀쩡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가 누렇게 변하고 점점 약해질 수 있다.

복원가가 한 권씩 붙잡고 처리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미국 의회도서관도 바로 이런 문제를 마주했다.

그리고 선택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대량 탈산처리(Mass Deacidification)**였다.

거대한 도서관 서가에 19~20세기 산성 종이로 제작된 책들이 수천 권 이상 빽빽하게 보관되어 있는 모습

문제는 이미 부서진 책만이 아니었다

산성 종이라고 하면 손끝만 대도 바스러지는 책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대량 탈산처리의 주요 대상은 오히려 그런 책이 아니다.

아직 책장을 넘길 수 있고 구조적으로도 비교적 멀쩡하지만, 종이 내부에서는 산성 열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책이다.

종이의 주요 성분인 셀룰로오스는 산성 환경에서 가수분해가 촉진될 수 있다.

긴 셀룰로오스 사슬이 점차 끊어지면서 종이의 강도도 떨어진다.

여기서 탈산처리가 등장한다.

종이 속 산성을 줄이고 알칼리 성분을 남겨 이후 산성화에 어느 정도 대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한계가 있다.

탈산처리는 이미 부서진 종이를 다시 강하게 만들어주는 치료가 아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도 이 점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미 강도를 잃은 종이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느 정도 힘이 남아 있는 산성 종이의 열화 속도를 늦추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산처리는 흔히 생각하는 ‘종이 복구’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손상의 속도를 늦추는 예방적 처리에 가깝다.

한 권씩 붓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한 장짜리 문서라면 보존가가 상태를 확인하고 적합한 탈산처리를 직접 할 수 있다.

책은 어렵다.

수백 장이 제본되어 있다.

물을 사용하는 처리에서는 종이가 팽창할 수 있고, 잉크나 접착제가 물에 반응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수백만 권을 한 권씩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러 기관에서는 책을 해체하지 않고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미국 의회도서관 역시 여러 기술을 시험한 뒤 Bookkeeper라는 대량 탈산공정을 실제 프로그램에 사용했다.

2001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처리한 책과 일부 문서자료가 약 550만 점에 이른다.

한 명의 복원가가 평생 처리하기 어려운 규모다.

여러 권의 책이 대량 탈산처리를 위해 전문 처리장비의 원통형 챔버 안에 세워져 준비된 모습

책을 통째로 처리한다

의회도서관이 사용한 Bookkeeper 방식에서는 책을 세운 상태로 전용 처리장비에 넣는다.

책을 한 장씩 뜯어내지 않는다.

처리 과정에서는 아주 미세한 산화마그네슘(MgO) 입자가 책의 종이에 분산된다.

이 물질은 종이의 산성을 중화하는 데 관여하고, 처리 뒤에는 앞으로 생성될 산에 대응할 수 있는 알칼리성 성분도 남긴다.

의회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처리장비에 책을 넣은 뒤 다시 포장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의 공정은 약 1시간 30분 정도였다.

처리 속도만 보면 놀랍도록 빠르다.

하지만 여기에서 오해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모든 책을 기계에 넣는 것은 아니다.

처리보다 앞서 더 많은 판단이 필요하다.

너무 약한 책은 오히려 탈락한다

대량처리라고 하면 서가의 책을 차례대로 꺼내 기계에 넣는 모습이 떠오른다.

실제 과정에는 선별 작업이 있다.

종이가 이미 알칼리성이거나 장기보존성이 높은 책은 굳이 처리할 필요가 없다.

종이가 지나치게 취약해 페이지가 부서지는 책도 좋은 대상이 아니다.

페이지가 서로 붙어 있거나 책의 구조가 심하게 망가진 경우도 먼저 다른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코팅지가 사용된 책도 우선순위가 낮을 수 있다.

책이 산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닌 셈이다.

보존 담당자가 오래된 책의 종이 상태와 제본 손상을 확인하며 대량 탈산처리 대상 여부를 선별하는 모습

미국 의회도서관은 처리할 책의 제본과 본문 상태를 살피고,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자료를 골랐다.

경미한 제본 손상은 보존처리를 먼저 한 뒤 탈산공정으로 보내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앞선 글에서 계속 보았던 원칙이 등장한다.

처리방법보다 대상의 상태를 먼저 본다.

‘수명이 300% 늘어난다’는 말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의회도서관 자료에는 눈에 띄는 수치가 하나 있다.

처리된 종이를 인공적으로 노화시킨 뒤 접힘 내구도를 측정했을 때, 처리하지 않은 종이에 비해 사용 가능한 수명이 300% 이상 연장되는 성능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숫자만 떼어놓으면 이렇게 받아들이기 쉽다.

“100년 가는 책이 300년 이상 간다는 뜻인가?”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

이 수치는 가속노화 시험과 접힘 내구도 평가에서 나온 성능지표다.

실제 도서관의 책이 정확히 몇 년 더 살아남는지를 달력처럼 계산한 숫자가 아니다.

실제 책의 수명에는 종이의 종류, 온도와 습도, 빛, 이용 빈도 등 수많은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보존과학에서 숫자를 볼 때 시험조건까지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처리한 책이 제대로 탈산됐는지는 어떻게 알까?

수백만 권을 처리하면서 모든 책에서 종이 한 조각씩 떼어 검사할 수도 없다.

검사한다고 책을 훼손한다면 보존이라는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의회도서관은 일부 처리 묶음에 **시험용 종이(surrogate test paper)**를 함께 넣었다.

처리가 끝난 뒤 책 대신 이 시험지를 분석한다.

의회도서관 자료에 따르면 처리 묶음의 약 10%에 이런 시험지를 넣어 알칼리 예비량이 제대로 형성됐는지 확인했다.

목표 범위도 정해져 있었다.

처리된 종이의 pH와 알칼리 예비량 등이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는지 검사했다.

여기서 대량 보존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한 권을 섬세하게 다루는 복원과 달리, 수백만 권을 다룰 때는 공정 전체가 일정하게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품질관리가 중요해진다.

그런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다른 선택을 했다

더 흥미로운 점도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대규모 탈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해서 모든 국가기관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은 대량 탈산기술을 연구하고 관찰했지만, 자체적으로 같은 방식의 대규모 프로그램을 우선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두 기관이 보관하는 자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는 비교적 비슷한 형태의 인쇄책이 대량으로 존재한다.

기록관의 상자 안에는 상황이 훨씬 복잡할 수 있다.

문서 사이에 사진이 있고, 청사진이 있고, 각종 복사물이 있고, 금속 클립이나 다른 재료가 함께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을 하나의 대량처리 공정에 넣기가 어렵다.

이미 심하게 취약해진 자료라면 탈산보다 복제나 다른 보존방법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NARA는 저장환경을 개선하고 새로 만들어지는 영구기록에 더 좋은 종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같은 ‘산성 종이 문제’를 두고도 기관의 소장품과 목적에 따라 답이 달라진 것이다.

이 사례가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존에는 모든 기관에 통하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

수백만 권을 살리는 방법은 한 권을 복원하는 방법과 달랐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고서복원은 대부분 한 권 또는 한 장을 중심으로 했다.

종이의 상태를 보고, 잉크를 검사하고, 필요한 부분만 보강했다.

그런데 수백만 권 앞에서는 질문 자체가 달라진다.

어떤 책을 먼저 처리할 것인가.

어떤 상태의 책은 제외할 것인가.

한 번의 처리로 얼마나 많은 책을 안정화할 수 있는가.

그리고 처리 결과가 제대로 나왔다는 것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여기에서는 보존가뿐 아니라 보존과학자와 사서, 기술자, 기관의 수집정책까지 함께 움직인다.

대량 탈산처리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특이한 기계를 사용해서가 아니다.

한 권을 완벽하게 고치는 대신 수백만 권이 조금 더 오래 버틸 시간을 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산처리는 산성 종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마법도 아니다.

빛과 습도, 온도와 취급 상태가 나쁘다면 다른 열화는 계속된다.

결국 가장 거대한 도서관에서도 다시 기본으로 돌아온다.

좋은 보관환경.

안전한 취급.

자료에 맞는 처리.

그리고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개입.

수백만 권을 다루는 보존도 결국 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REFERENCES

Library of Congress
Mass Deacidification Program

Library of Congress
Mass Deacidification — Selection Criteria and Procedures

Library of Congress
Mass Deacidification Research Reports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Mass Deacidification: Considerations for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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