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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젖은 책은 왜 마르고 나면 울퉁불퉁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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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물을 쏟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다.

빨리 말려야 한다.

젖은 물만 없어지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다 마른 책을 보면 이상하다.

종이는 물결처럼 울어 있고, 페이지 가장자리는 들쭉날쭉하다. 책 전체가 전보다 두꺼워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분명 물은 사라졌다.

그런데 책은 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물에 젖었다 마른 뒤 여러 페이지가 파도처럼 울퉁불퉁하게 변형된 오래된 책

종이는 물을 그냥 묻히는 재료가 아니다

종이를 유리판처럼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종이는 수많은 식물성 섬유가 서로 얽혀 만들어진 재료다.

그리고 이 섬유들은 주변의 수분을 받아들이고 다시 내놓는다.

습도가 높아지면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해지면 수분을 방출한다.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는 종이가 주변 습도와 평형을 이루려 하면서 수분을 흡수하고 방출하고, 그 과정에서 팽창과 수축이라는 크기 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책에 물이 직접 닿으면 이 변화가 훨씬 커진다.

섬유가 물을 머금으면서 불어나고 종이 전체의 형태도 달라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마르면서 섬유는 수축한다.

그런데 종이 전체가 정확히 같은 순간,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 평평했던 종이에는 작은 높낮이가 생긴다.

보존 분야에서는 이런 평면의 변형을 **코클링(Cockling)**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흔히 보는 ‘종이가 울었다’는 상태다.

물 한 방울도 경계선을 남긴다

책에 커피잔만 한 물자국이 생긴 경우를 생각해보자.

젖은 가운데 부분과 마른 바깥 부분이 동시에 존재한다.

젖은 곳은 팽창하려 한다.

마른 곳은 그대로 있다.

한 장의 종이 안에서 서로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물이 마르면서 수분 속에 녹아 있던 오염물질이나 종이 내부의 성분이 물의 이동을 따라 가장자리로 몰릴 수 있다.

물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갈색 또는 누런 경계선이 남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오래된 문서에서 흔히 보는 **물때선(Tideline)**이다.

오래된 종이 한쪽에 물이 스며들었다 마르면서 물결 모양의 갈색 경계선과 약한 변형이 남은 모습

그래서 오래된 종이의 얼룩을 보면 물이 어디까지 들어갔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물은 사라져도 지나간 자리는 남는다.

책 한 권은 종이만 젖는 것이 아니다

낱장 문서와 책이 다른 점도 있다.

책에는 여러 재료가 한꺼번에 들어 있다.

수백 장의 종이. 실. 접착제. 천. 가죽. 두꺼운 표지판.

이 재료들은 물에 반응하는 방식과 마르는 속도가 서로 다르다.

종이는 어느 정도 말랐는데 두꺼운 표지판 안에는 아직 수분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NEDCC는 실제로 젖은 책을 말릴 때 책등 주변과 안쪽 홈, 표지판에는 수분이 더 오래 남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겉으로 만졌을 때 말라 보인다고 해서 책 전체가 마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상태에서 바로 책장에 꽂아버리면 남아 있던 습기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곰팡이다.

조건이 맞으면 젖거나 습한 자료에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도 곰팡이가 시작될 수 있다.

그래서 물에 젖은 책의 문제는 단순히 ‘종이를 평평하게 만드는 일’보다 먼저 얼마나 빨리 안정적인 상태로 만들 것인가에 있다.

햇볕에 펼쳐놓으면 가장 빨리 마르지 않을까?

물에 젖은 물건을 말릴 때 가장 익숙한 방법은 햇볕이다.

책도 펼쳐서 햇빛 아래 두면 금방 마를 것 같다.

하지만 귀중한 책이나 오래된 자료라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강한 빛은 종이와 잉크에 또 다른 변화를 줄 수 있고, 너무 빠르고 불균일하게 마르면 변형이 심해질 수 있다.

뜨거운 열을 직접 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헤어드라이어로 한쪽부터 급하게 말린다면 종이의 한 부분은 이미 수축하는데 다른 부분은 아직 젖어 있을 수 있다.

빨리 마르는 것과 잘 마르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보존기관에서 젖은 자료를 다룰 때 온도와 습도, 공기의 흐름까지 함께 관리하는 이유다.

젖은 정도에 따라 방법도 달라진다

조금 축축한 책 한 권과 홍수에 완전히 잠긴 책 수백 권을 같은 방법으로 말릴 수는 없다.

NEDCC는 자료의 젖은 정도와 재질에 따라 건조방법을 달리한다.

소량의 약간 젖은 책은 통풍이 되는 환경에서 공기 건조를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물에 흠뻑 젖은 책이나 많은 양의 자료는 동결과 진공 동결건조(Vacuum freeze-drying) 같은 전문적인 방법이 필요할 수 있다.

8번째 글에서 살펴봤던 바이마르 도서관 화재에서도 같은 이유로 젖은 책들을 먼저 동결해 시간을 확보했다.

물을 없애는 일보다 곰팡이와 추가 변형이 진행되는 시간을 멈추는 것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조심해야 하는 책도 있다.

광택이 있는 **코팅지(Coated paper)**로 만든 책이다.

물에 젖은 광택 코팅지 책의 페이지들이 서로 밀착되어 붙기 시작한 모습

코팅지는 젖은 상태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가 마르면 페이지끼리 강하게 달라붙을 수 있다.

억지로 떼려고 하면 인쇄면 자체가 함께 떨어질 수 있다.

NEDCC는 젖은 코팅지 자료를 특별히 주의해야 하며, 많은 경우 젖은 상태에서 신속히 동결해 전문적인 처리를 받도록 권한다.

책이 물에 젖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젖은 책’이 아닌 셈이다.

다 말랐는데 왜 예전보다 두꺼워졌을까?

젖었던 책을 말리고 나면 책장에 다시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두꺼워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페이지 하나하나가 아주 조금씩 울기 때문이다.

한 장에서 생긴 변화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300장이 겹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작은 굴곡들이 쌓이면서 텍스트 블록 전체의 부피가 커진다.

NEDCC도 물에 젖었다가 건조된 기록물은 이전보다 더 많은 보관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물 손상의 재미있으면서도 무서운 점이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았고 글자도 멀쩡해 보여도 책의 구조 자체는 이미 달라져 있을 수 있다.

그럼 다시 물을 먹여 평평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여기까지 알게 되면 반대의 생각도 든다.

물 때문에 종이가 울었다면 다시 조금 촉촉하게 만든 뒤 눌러 말리면 펴지지 않을까?

실제로 종이 보존에서는 **가습(Humidification)**과 건조·평탄화 과정을 이용해 변형을 줄이는 처리가 존재한다.

미 의회도서관의 실제 처리 사례에서도 통제된 습기를 이용해 종이섬유를 이완시킨 뒤 평평하게 만드는 방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이것은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무거운 책을 올려놓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잉크가 물에 번질 수도 있고, 종이가 지나치게 약할 수도 있으며, 한 번 물 손상을 받은 자료에 새로운 얼룩이 생길 수도 있다.

책이라면 제본 구조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심하게 변형된 고서를 집에서 다시 적셔 펴려고 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물을 이용해 생긴 손상을 고치는 데 다시 물을 사용할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정교한 통제가 필요하다.

물은 사라져도 책에는 움직인 흔적이 남는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책에 물이 들어갔다.

말리면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종이 안에서는 훨씬 많은 일이 벌어졌다.

섬유가 물을 흡수하고, 팽창하고, 다른 속도로 마르고, 다시 수축했다.

잉크가 움직일 수도 있었고, 접착제가 약해질 수도 있었고, 책등과 표지는 종이와 다른 속도로 말랐다.

그 결과 책에는 물결과 얼룩, 뒤틀림이 남는다.

그래서 오래된 책의 울퉁불퉁한 페이지를 보면 단순히 ‘관리가 안 된 책’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 책은 오래전 한 번 물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누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보관 중 침수됐을 수도 있다.

종이에 남은 물결은 그 사건이 지나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물이 마른다고 해서 물 손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오래된 책을 펼쳤을 때 여러 페이지가 같은 방향으로 울어 있다면, 그 모양 자체를 한 번 살펴볼 만하다.

책은 때로 글보다 먼저 자신이 겪었던 일을 보여준다.

REFERENCE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Caring for Paper Object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Agent of Deterioration: Water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Basic Care of Books

Northeast Document Conservation Center
Emergency Salvage of Wet Books and Records

Northeast Document Conservation Center
Freezing and Drying Wet Books and Records

Library of Congress
Paper — Preservation 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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