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고서에는 왜 그렇게 얇은 종이를 붙일까?
오래된 책의 찢어진 페이지를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단순하다.
찢어진 부분보다 조금 넓은 종이를 하나 잘라 뒤에 붙이면 되지 않을까?
튼튼하게 하려면 두꺼운 종이가 더 좋아 보인다.
그런데 실제 종이 보존현장을 보면 정반대에 가까운 재료가 등장한다.
빛이 비칠 정도로 얇은 종이.
손끝으로 집으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종이다.
그 얇은 종이 한 조각으로 수백 년 된 페이지의 찢어진 부분을 이어준다.
왜 하필 이렇게 얇은 종이를 사용하는 걸까?

두꺼우면 더 튼튼할 것 같지만
종이 한 장이 찢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그 뒤에 두꺼운 복사용지를 단단하게 붙이면 찢어진 곳 자체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원래 종이는 얇고 유연한데 보수한 부분만 갑자기 두껍고 뻣뻣해진다.
책장을 넘길 때 종이는 계속 휘어진다.
그때 힘이 보수한 부분에서 끝나는 지점에 집중될 수 있다.
이번에는 원래 찢어진 곳이 아니라 그 옆의 약한 종이가 다시 손상될 가능성이 생긴다.
보수는 단순히 찢어진 틈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원래 종이가 움직이는 방식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보수용 종이는 가능한 한 얇으면서도 필요한 강도를 가져야 한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일본 종이, 흔히 Japanese tissue라고 부르는 보수용 종이다.
얇은데 어떻게 튼튼할까?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하다.
얇으면 당연히 약해야 할 것 같다.
비밀은 두께보다 섬유에 있다.
종이 보존에서 많이 사용하는 일본 종이 가운데는 닥나무 계열인 고조(Kozo) 섬유로 만든 것이 있다.
고조 섬유는 길다.
이 긴 섬유들이 서로 얽히면서 아주 얇은 종이에서도 의외로 높은 강도를 만들어낸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실제 기록물 복원에서 얇은 일본 종이를 사용하면서, 긴 섬유가 매우 얇은 종이에 상당한 지지력을 준다고 설명한다.
미 의회도서관의 보존처리 사례에서도 찢어진 부분에 가볍고 강하며 안정적인 일본 종이를 사용했다.

이 종이의 또 다른 장점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문 위를 지나가야 하는 보수라면 원래 글자를 가려서는 곤란하다.
얇은 종이를 적절하게 선택하면 보수가 된 뒤에도 아래의 글이나 그림이 상당 부분 그대로 보인다.
좋은 보수가 항상 ‘감쪽같이 숨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재가 원래 기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책을 지지하되, 책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재료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 일본 종이나 붙이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있다.
보존용 일본 종이라고 해서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얇은 것부터 제법 두꺼운 것까지 있고, 색과 질감도 다르다.
고조 외에도 감피(Gampi), 미쓰마타(Mitsumata) 같은 섬유로 만든 종이도 있다.
실제 보수에서는 원래 종이의 두께와 강도, 색, 찢어진 위치를 보고 적절한 재료를 고른다.
Smithsonian의 한 고서 보수 사례에서는 찢어진 곳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무게의 일본 종이를 사용했다. 글씨 위로 보수가 지나가는 부분에는 더 얇은 종이를 선택해 아래 내용이 보이도록 했다.
이쯤 되면 ‘종이를 붙인다’는 말이 꽤 단순하게 들린다.
실제로는 작은 종이 조각 하나를 고르기 위해서도 원래 종이가 어떤 종이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지도 긴 닥 섬유를 이용하는 전통 종이라는 점에서 보존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마그나 카르타 보존처리에서는 일본 종이와 한국 종이가 보수재로 사용된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한지라면 아무거나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존에서는 종이의 원료와 제조법, 첨가물, 두께와 물성까지 함께 고려한다.
종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보수용 종이를 골랐다.
이제 무엇으로 붙일까?
여기에서 흔히 예상하는 순간접착제나 목공용 접착제 대신 조금 뜻밖의 재료가 등장한다.
**밀전분풀(Wheat starch paste)**이다.
말 그대로 밀에서 얻은 전분을 이용해 만든 접착제다.
겉모습만 보면 집에서 사용하는 풀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종이 보존에서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중요한 재료다.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는 밀전분풀이 종이 수리와 책의 낱장 재부착 등에 사용되는 접착제이며, 종이에 장기간 직접 사용하는 데 적합한 재료로 평가해 왔다.

왜 굳이 전분풀일까?
잘 붙는 것만 생각한다면 더 강한 접착제도 많다.
하지만 보존에서는 얼마나 강하게 붙느냐만큼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본다.
접착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누렇게 변하지는 않는지,
종이를 지나치게 단단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훗날 다시 보존처리가 필요할 때 제거하거나 재처리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밀전분풀은 이런 이유로 종이 보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다만 ‘전분풀은 언제나 완벽하게 제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접착제의 농도와 사용량, 종이의 상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보존에서 말하는 가역성은 마법 같은 되돌리기 버튼이 아니다.
미래의 처리를 가능한 한 막지 않는 선택에 가깝다.
풀에 들어 있는 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방법이 꽤 간단해 보인다.
얇은 일본 종이에 밀전분풀을 발라 찢어진 곳에 붙이면 끝일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보존처리는 여기서 다시 복잡해진다.
전분풀에는 물이 들어 있다.
그리고 오래된 책에는 물에 민감한 재료가 있을 수 있다.
수용성 잉크나 안료라면 작은 양의 수분에도 번질 가능성이 있다.
종이가 지나치게 취약하다면 젖었다 마르는 과정에서 변형될 수도 있다.
미 의회도서관이 한 채색 문서를 복원했을 때도 물에 민감한 자료라는 점을 고려해, 보수용 종이에 바른 전분풀을 어느 정도 말린 뒤 문서에 적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Library of Congress의 보수 지침에서도 보수가 글씨 부분을 지나갈 경우 잉크가 물에 반응하는지 먼저 확인하도록 한다.
즉 같은 일본 종이와 전분풀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종이를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재료보다 먼저 대상이 온다.
이 원칙이 계속 반복된다.
너무 약한 종이는 보수조차 견디지 못할 수 있다
더 의외인 경우도 있다.
종이가 너무 약하면 ‘좋은 보수재’를 사용하는 것조차 위험할 수 있다.
Smithsonian의 스크랩북 보존 사례에서는 종이가 극도로 취약해져 있어, 일본 종이와 전분풀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습식 보수가 모든 페이지에 적합하지 않았다.
보수한 부분은 버텨도 그 경계의 원래 종이가 새로운 힘을 받아 다시 갈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답이 조금 달라진다.
“찢어진 종이에 어떤 종이를 붙여야 할까?”
사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다.
지금 이 종이는 보수를 견딜 수 있을까?
이런 판단 때문에 전문적인 종이 보존은 재료 이름 몇 개를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좋은 보수는 생각보다 조용하다
잘 처리된 종이 보수를 보면 의외로 화려한 것이 없다.
얇은 종이 한 조각과 소량의 접착제가 전부인 경우도 있다.
멀리서 보면 어디를 고쳤는지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찢어진 두 면이 다시 안정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페이지를 넘길 때 필요한 유연성도 남아 있다.
보수재가 책보다 강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종이가 다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고서의 찢어진 페이지를 보면서 두꺼운 종이와 강력한 접착제를 떠올렸다면 보존의 생각은 거의 반대 방향에서 시작한다.
더 두껍게.
더 세게.
더 단단하게.
가 아니라,
얼마나 적게 개입하면서 필요한 만큼 지지할 수 있는가.
그것이 보수재를 고르는 기준에 더 가깝다.
다음에는 실제 보존기관에서 한 권의 자료를 어떻게 다루는지 따라가 본다.
화재와 물, 이전의 잘못된 수선처럼 여러 손상이 한꺼번에 얽힌 자료 앞에서 보존전문가는 어디부터 손을 댈까?
다음 글은 설명이 아니라 실제 복원 사례 하나를 처음 상태부터 처리 결과까지 따라가 보는 기록으로 구성한다.
REFERENCE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Basic Care of Book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Wheat Starch Paste
Library of Congress
Treatment of Rare and Colorful Marriage Document
Library of Congress
Collections Care Section — Basic Minor Treatment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What’s a Conservator?
Smithsonian Libraries and Archives
The Fix — The Art of Simple Paper Repair
voucher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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