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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의 퀴퀴한 냄새, 그냥 ‘헌책 냄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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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이나 오래된 서재에 들어가면 특유의 냄새가 난다.

종이 냄새 같기도 하고, 나무 냄새 같기도 하다.

조금 달콤하게 느껴지는 책도 있고, 눅눅한 지하실처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책도 있다.

그래서 오래된 책에서 냄새가 나면 흔히 이렇게 생각한다.

“오래된 책이니까 원래 이런 냄새가 나는 거겠지.”

그런데 냄새가 유난히 강하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 냄새는 단순히 책의 나이를 알려주는 것일까, 아니면 보관환경에 문제가 있었다는 신호일까?

오래된 서재의 책장에서 꺼낸 가죽 장정 고서 한 권을 펼쳐 종이와 책등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모습

사실 ‘오래된 책 냄새’는 정말 존재한다

종이는 아무 냄새도 내지 않는 재료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와 잉크, 접착제, 가죽 같은 책의 재료에서는 아주 적은 양의 여러 화학물질이 공기 중으로 나온다.

이런 물질을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Volatile Organic Compounds)**이라고 한다.

2009년 역사적 종이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오래된 종이에서 아세트산과 푸르푸랄을 비롯한 여러 휘발성 물질이 검출됐고, 이 성분들이 우리가 느끼는 이른바 ‘오래된 책 냄새’와 관계한다는 사실이 연구됐다.

더 흥미로운 점은 냄새를 만드는 성분이 종이의 상태와도 관계한다는 것이다.

종이에 들어 있는 리그닌이나 로진, 셀룰로오스가 분해되면서 서로 다른 휘발성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책이 내놓는 기체 성분을 분석해 종이를 훼손하지 않고 열화상태를 살펴보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책의 냄새가 단순한 분위기가 아니라 종이가 늙으며 만들어내는 화학적 흔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퀴퀴한 냄새’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여기에서 구분해야 할 냄새가 있다.

눅눅한 창고나 오래 닫아둔 지하실에서 나는 듯한 머스티(musty)한 냄새다.

이런 냄새가 난다고 해서 무조건 현재 곰팡이가 자라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과거에 습한 곳에 보관되었거나 예전에 곰팡이가 발생했던 책에서도 냄새가 남을 수 있다.

반대로 활동 중인 곰팡이가 있는데 냄새가 아주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보존기관에서는 냄새만으로 곰팡이를 판단하지 않는다.

책 표면과 책등, 표지 안쪽, 면지, 본문 가운데까지 함께 살핀다.

오래된 책의 표지 안쪽과 책등 주변을 펼쳐 흰색 또는 회색의 미세한 곰팡이 흔적이 있는지 관찰하는 모습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는 활동 중인 곰팡이가 솜털이나 실 같은 형태로 보일 수 있고, 검정·흰색 또는 다른 색을 띠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습한 상태라면 문질렀을 때 번질 수도 있다.

반대로 활동을 멈춘 곰팡이는 건조한 먼지나 얼룩처럼 보이기도 한다.

폭싱 역시 갈색 반점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곰팡이와 혼동하기 쉽다.

하지만 폭싱과 활동 중인 곰팡이는 같은 현상이 아니다.

결국 냄새나 얼룩 하나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냄새를 맡으려고 코를 가까이 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책을 발견하면 무의식적으로 책에 코를 가까이 대게 된다.

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곰팡이나 의심스러운 가루가 있다면 굳이 가까이에서 냄새를 확인할 필요는 없다.

곰팡이는 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게 알레르기나 호흡기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NEDCC는 활동 중인 곰팡이뿐 아니라 활동을 멈춘 곰팡이 역시 건강상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안내한다.

특히 솜털 같은 성장물이 보이거나 여러 권에서 비슷한 문제가 한꺼번에 발견된다면 직접 털어내거나 닦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다.

가루를 털다가 포자를 주변 책으로 퍼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냄새를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책과 주변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낫다.

냄새가 나는 책보다 책장이 문제일 수도 있다

책 한 권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고 해보자.

책만 꺼내 햇볕에 말리고 다시 같은 자리에 꽂으면 해결될까?

원인이 보관공간이라면 냄새는 다시 생길 수 있다.

벽에 습기가 차는지, 창문 주변에 결로가 생기는지, 예전에 누수가 있었는지, 책장이 외벽에 바짝 붙어 있지는 않은지, 공기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구석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래된 책장이 외벽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고 책 뒤쪽 공간의 공기 흐름이 부족한 서재 환경을 점검하는 모습

곰팡이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방이 따뜻하냐 차갑냐가 아니다.

수분이다.

종이와 가죽은 공기 속의 수분을 흡수한다.

습도가 높은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곰팡이가 성장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

CCI의 곰팡이 연구에서는 대부분의 곰팡이가 재료 내부의 이용 가능한 수분이 충분해져야 성장하기 시작하며, 습도가 높아질수록 눈에 보이는 성장이 나타나는 시간도 훨씬 짧아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퀴퀴한 냄새가 지속된다면 방향제보다 먼저 습도계를 보는 편이 더 도움이 된다.

비닐에 넣어 냄새를 가두면 해결될까?

냄새 나는 책을 다른 책과 떨어뜨리려고 비닐봉투에 밀봉하고 싶을 수도 있다.

냄새 나는 책을 다른 책과 떨어뜨리려고 비닐봉투에 밀봉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비닐 보관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문제가 있다.

책이 충분히 건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밀폐하면 내부에 습한 미세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특히 곰팡이가 실제로 활동 중이라면 단순히 밀폐하는 행동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NEDCC도 곰팡이가 있는 책을 냉동할 목적이 아니라면 습한 상태로 플라스틱 봉투에 밀봉하지 않도록 안내한다.

책을 다른 자료와 분리해야 한다면 먼저 현재 상태와 습도를 확인하고, 곰팡이가 의심되는 귀중한 자료는 보존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안전하다.

향수나 탈취제를 뿌리면 냄새는 사라질까?

냄새 때문에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 하나가 책에 향수나 섬유탈취제를 직접 뿌리는 것이다.

냄새가 가려질 수는 있다.

하지만 종이에는 새로운 액체와 화학성분이 들어간다.

얼룩을 만들 수도 있고, 잉크나 표지재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보존에서 냄새 문제를 다루는 기본 방향은 냄새를 다른 향으로 덮는 것이 아니다.

먼저 책을 충분히 건조한 환경에 두고 공기가 순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Library of Congress는 눈에 보이는 곰팡이가 없는 퀴퀴한 책이라면 서늘하고 비교적 건조한 환경에서 공기와 접촉시키면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가 줄어들 수 있다고 안내한다.

양장본이라면 책을 억지로 180도로 펼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금 벌려 페이지 사이로 공기가 지나가도록 할 수 있다.

빠르게 냄새를 없애는 것보다 원인이 다시 생기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활성탄과 베이킹소다는 어떻게 봐야 할까?

조금 뜻밖이지만 Library of Congress와 NEDCC는 퀴퀴한 냄새를 줄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활성탄이나 베이킹소다 같은 냄새 흡착재를 소개하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조건이 있다.

책과 직접 닿게 하면 안 된다.

냄새 흡착재와 책을 각각 분리한 상태로 하나의 큰 용기 안에 두는 식이다.

그리고 이 방법도 곰팡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아니다.

책이 이미 충분히 건조하고 활동성 곰팡이가 없는데 냄새만 남아 있을 때 고려할 수 있는 보조적인 방법이다.

곰팡이가 살아 있는 상태라면 냄새 제거보다 곰팡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냄새보다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은 원인이다

오래된 책에서는 어느 정도 특유의 향이 날 수 있다.

종이와 가죽, 접착제가 오랜 시간 변하면서 만들어낸 냄새다.

그래서 ‘오래된 책 냄새’ 자체를 모두 이상 징후라고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에 없던 퀴퀴한 냄새가 갑자기 강해졌다면 한 번쯤 주변을 살펴볼 이유가 있다.

책이 축축하지 않은지.

솜털이나 가루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지.

최근 누수가 있었는지.

책장 뒤쪽이 습하지 않은지.

주변 다른 책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는지.

중요한 것은 냄새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냄새가 생겼는지를 찾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책이 보내는 신호 가운데 냄새는 꽤 특이하다.

갈색 얼룩은 눈으로 봐야 하고, 책벌레 구멍은 페이지를 넘겨야 발견한다.

하지만 냄새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먼저 도착한다.

때로는 그것이 별문제 없는 오래된 종이의 냄새일 수도 있다.

때로는 과거 습기의 흔적일 수도 있고, 지금 보관환경을 다시 살펴보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오래된 책의 냄새는 없애야 할 대상이기 전에 먼저 읽어봐야 할 단서다.

REFERENCES

Library of Congress
Books — Preservation FAQ

Library of Congress
Preserving Your Books — Storing Your Book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Mould Prevention and Collection Recovery: Guidelines for Heritage Collections

Northeast Document Conservation Center
Emergency Salvage of Moldy Books and Paper

Northeast Document Conservation Center
Frequently Asked Preservation Questions

Matija Strlič et al.
Material Degradomics: On the Smell of Old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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