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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의 볼록한 가로줄, 처음부터 장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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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가죽 장정 책을 옆에서 보면 책등에 볼록한 가로줄이 여러 개 보일 때가 있다.

세 줄짜리도 있고, 네 줄, 다섯 줄이 규칙적으로 놓인 책도 있다.

금박 장식까지 들어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옛날 책을 멋있게 보이게 하려고 만든 장식인가 보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 장식으로 만든 가로줄도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장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된 책에서는 그 볼록한 줄 바로 아래에 책의 종이 묶음을 붙잡고 있는 끈이나 가죽끈이 실제로 지나가고 있었다.

오래된 가죽 장정 고서의 책등에 네댓 개의 볼록한 가로줄이 규칙적으로 솟아 있는 모습

책장을 실로만 묶은 것이 아니었다

옛날 책은 여러 장의 종이를 접은 묶음, 즉 gathering을 차례대로 연결해 만들었다.

이 종이 묶음들을 책으로 만들려면 서로 단단하게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종이 묶음끼리 실로 이어놓는 것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아니었다.

책등을 따라 여러 개의 튼튼한 끈을 가로로 배치하고, 각각의 종이 묶음을 그 끈에 실로 꿰매는 방식이 널리 사용됐다.

이 끈을 sewing support, 즉 제본 지지대라고 한다.

재료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끈을 쓰기도 했고, 가죽이나 알럼타우드(alum-tawed) 가죽 스트립을 사용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지지대가 책의 여러 종이 묶음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끝은 표지를 이루는 판에 연결될 수도 있었다.

본문과 표지가 완전히 별개가 아니라, 안쪽의 제본 구조를 통해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끈이 책 밖에서 보였을까?

초기의 여러 서양 제본에서는 이 sewing support가 책등 표면보다 약간 튀어나온 상태였다.

그 위로 가죽 표지를 씌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가죽이 아래쪽의 굵은 끈 형태를 따라 눌리면서 책등 밖으로 볼록한 선이 나타난다.

이것이 우리가 고서에서 보는 raised band의 한 가지 전형적인 기원이다.

즉 가로줄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아래에 실제 구조물이 있었고, 가죽이 그 구조를 따라가면서 바깥에 모양이 나타난 것이다.

가죽 표지가 벗겨진 오래된 책등에서 종이 묶음들이 여러 개의 굵은 제본끈에 실로 꿰매져 있는 구조가 드러난 모습

이 사실을 알고 다시 오래된 책을 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책등의 볼록한 줄은 단순한 장식선이 아니라, 한때는 책 내부의 구조가 바깥으로 드러난 흔적이었던 것이다.

건물 벽 밖으로 구조용 기둥이 드러난 것과 조금 비슷하다.

볼록한 줄 아래에는 책을 붙잡는 ‘뼈대’가 있었다

책을 펼칠 때마다 본문은 움직인다.

페이지가 넘어가고, 종이 묶음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고, 책등도 계속 굽혀진다.

이때 sewing support는 여러 묶음을 연결하면서 힘을 분산시키는 구조의 일부가 된다.

특히 크고 무거운 책에서는 이런 구조가 중요했다.

종이 묶음들이 지지대에 꿰매지고, 그 지지대가 표지판까지 연결되면 본문과 표지가 하나의 구조로 묶인다.

그래서 오래된 제본이 손상되어 가죽 책등이 떨어진 책을 보면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날 때가 있다.

실.

종이 묶음.

끈.

판과 연결된 지지대.

평소에는 가죽 아래 감춰져 있던 책의 골격이다.

이 구조를 보면 책등이 단순히 본문을 덮고 있는 장식물이 아니라, 책을 펼칠 때마다 제본 전체와 함께 움직이는 부분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책등이 매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본 방법도 달라졌다.

제본가는 책등에 작은 홈을 만들고 지지끈을 그 안쪽으로 들어가게 하는 방식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를 recessed support, 즉 오목하게 들어간 지지대라고 한다.

굵은 끈이 책등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으니 가죽을 씌운 뒤에도 책등을 비교적 매끄럽게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원래의 raised band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구조적으로는 더 이상 볼록한 줄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사람들이 그 모습을 좋아했던 것이다.

오래된 고급 가죽책 특유의 모습이 이미 하나의 디자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false raised band다.

안에는 끈이 없는데 밖에는 줄이 있다

말 그대로 ‘가짜 raised band’다.

책등 안쪽의 실제 sewing support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가죽 아래에 별도의 재료를 덧대거나 외관을 만들어 볼록한 줄을 표현한다.

겉으로 보면 전통적인 제본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쪽 구조와 가로줄의 위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꽤 재미있는 상황이 생긴다.

오래된 책의 책등에 다섯 개의 볼록한 줄이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반드시 그 아래에 실제 제본끈이 다섯 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일부는 진짜 구조일 수 있고, 전부 장식일 수도 있으며, 실제 지지대와 다른 위치에 장식선을 만든 경우도 있다.

오래된 가죽 장정 책의 책등을 조사하며 외부의 볼록한 가로줄 위치와 내부의 실제 제본 지지대 구조가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모습

책등만 보고 내부 구조를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진짜보다 가짜 줄이 더 많았던 책도 있다

실제 유물에서도 이런 사례가 발견된다.

Calouste Gulbenkian Museum이 조사한 1571년 베네치아 제본에서는 본문이 네 개의 실제 sewing support 위에 꿰매져 있었다.

그런데 책등 외관을 더 화려하게 보이게 하려고 다섯 개의 장식용 false band를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겉에서 보면 아홉 개의 raised band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실제 구조는 네 개.

겉으로 보이는 느낌은 아홉 개.

책등도 얼마든지 사람을 속일 수 있었던 셈이다.

이 사례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가짜 장식’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능에서 시작한 형태가 어느 순간 스타일로 독립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끈이 있어서 줄이 생겼다.

나중에는 줄이 멋있어서 끈이 없어도 줄을 만들었다.

건축에서 구조물이 장식이 되는 과정과 꽤 닮았다.

낡은 책등을 뜯어보면 답을 알 수 있을까?

그렇다고 궁금하다고 책등을 뜯어볼 수는 없다.

고서의 제본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가죽을 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중요한 원래 재료를 훼손할 수 있다.

보존조사에서는 이미 손상된 부분을 통해 보이는 구조를 관찰하거나, 기존 기록과 제본 특징을 함께 비교한다.

책등이 일부 떨어진 책에서는 sewing support가 우연히 드러나기도 한다.

이때는 오히려 중요한 정보가 된다.

끈의 재료는 무엇인지, 몇 개가 있는지, 종이 묶음은 어떤 방식으로 꿰매졌는지, 지지대가 표지판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낡아서 드러난 부분이 그 책의 제작방법을 보여주는 작은 창이 되는 셈이다.

책등의 줄 하나가 시대의 변화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구조였다.

그다음에는 구조이면서 장식이었다.

나중에는 구조와 관계없는 장식으로도 남았다.

raised band의 역사를 따라가면 책 제작 방식이 변하는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래서 고서를 조사할 때는 단순히

“가로줄이 다섯 개 있다” 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줄이 실제 sewing support 때문에 생긴 것인지,

장식용 false band인지, 현재 보이는 책등이 처음 제본됐을 때의 것인지, 후대에 다시 제본하면서 만들어진 것인지까지 생각하게 된다.

작은 외형 하나가 책의 제작기술과 취향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오래된 책의 장식에는 이유가 숨어 있을 때가 있다

고서를 처음 보면 화려한 가죽과 금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볼록한 책등도 당연히 장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시작은 꽤 실용적이었다.

종이 묶음을 실로 꿰매고, 그것을 굵은 지지대에 연결하고, 다시 표지판과 이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구조가 가죽 밖으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그 모양 자체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능이 사라진 뒤에도 형태는 남았다.

고서를 보다 보면 이런 일이 자주 나타난다.

지금은 장식처럼 보이는 것이 원래는 도구였고, 지금은 쓸모없어 보이는 흔적이 한때는 꼭 필요한 장치였다.

책등의 볼록한 선은 장식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책의 뼈대가 밖으로 밀고 나온 흔적이었다.

그리고 어떤 책에서는 뼈대가 사라진 뒤에도 그 흔적만 계속 살아남았다.

다음 글에서는 책등에서 책의 옆면으로 시선을 옮긴다.

책을 닫아두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페이지를 살짝 비스듬하게 펼치는 순간 그림 하나가 나타난다.

오래된 책의 가장자리에 숨겨놓았던 fore-edge painting 이야기다.

REFERENCES

British Library
The British Library Guide to Bookbinding: History and Techniques

University of Missouri Libraries
Rare Books: A Glossary — Raised Bands and Sewing Supports

Calouste Gulbenkian Museum
Three Venetian Sunk-Panel Bindings in the Calouste Gulbenkian Museum

Maidstone Museum
Speculum Mu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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