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표지가 갈라지는 건 단순히 오래돼서일까?
오래된 가죽 장정 책을 꺼냈는데 손끝에 붉은 갈색 가루가 묻는다.
처음에는 책장 먼지인가 싶다.
한번 털어내고 다시 만져본다.
그런데 또 묻는다.
자세히 보면 책등의 가죽 표면이 매끈하지 않다. 아주 고운 가루처럼 부서지고 있고, 손이 많이 닿는 모서리와 표지 연결부는 색까지 옅어져 있다.
이쯤 되면 단순히 “가죽이 오래돼서 낡았구나”라고 넘기기 어렵다.
보존 분야에서는 이런 심한 가죽 열화를 **레드 로트(Red rot)**라고 부른다.
이름에는 ‘rot’, 즉 썩는다는 말이 들어가지만 실제로 곰팡이나 세균이 가죽을 썩게 만든 현상은 아니다.
오히려 가죽 안에서 오랫동안 진행된 화학적 열화에 가깝다.

오래된 가죽이라고 모두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백 년 된 가죽 장정 가운데도 표면이 비교적 단단하게 남아 있는 책이 있다.
반대로 그보다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책인데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가루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종이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다.
나이만으로 상태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서양 책에는 송아지, 염소, 양, 돼지 등의 가죽이 표지재로 사용됐다.
가죽은 단순히 동물의 피부를 말린 것이 아니다.
쉽게 썩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여러 과정을 거쳐 가죽으로 만든다. 책 표지에는 특히 식물에서 얻은 탄닌을 사용하는 **식물성 무두질 가죽(Vegetable-tanned leather)**이 많이 사용됐다.
잘 만들어진 가죽은 상당히 오래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가죽을 만드는 방법과 사용된 재료, 이후 보관환경에 따라 노화의 모습도 달라진다.
그래서 겉으로 비슷한 갈색 가죽책 두 권이 수십 년 뒤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레드 로트는 왜 붉은 가루가 될까?
가죽의 기본 구조에는 **콜라겐(Collagen)**이라는 단백질 섬유가 있다.
이 섬유구조가 가죽의 힘과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산이다.
과거 대기 중에는 석탄 연소 등에서 나온 황산화물 같은 오염물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시기가 있었다.
식물성 무두질 가죽이 이런 오염물질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으면 산성 열화가 진행될 수 있다.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는 레드 로트를 심하게 열화된 식물성 무두질 가죽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설명한다. 특히 황산 같은 산의 작용과 대기오염물질, 가죽 자체의 무두질 조건 등이 관련될 수 있다.
가죽 내부의 화학적 구조가 약해지면 표면도 더 이상 단단하게 버티지 못한다.
처음에는 작은 균열처럼 보인다.
조금 더 진행되면 표면이 부드러운 가루처럼 떨어진다.
색도 흔히 붉은 갈색을 띤다.
그래서 ‘Red rot’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이다.
책이 가만히 있는데도 가죽 내부에서는 변화가 계속될 수 있다는 것.
누가 표지를 찢지 않아도 된다.
물을 쏟지 않아도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반응이 오랜 시간 쌓인 끝에 어느 순간 손끝에 가루가 묻기 시작한다.
갈라진 가죽이 모두 레드 로트는 아니다
여기서 하나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가죽이 갈라졌다고 해서 전부 레드 로트인 것은 아니다.
가죽은 온도와 습도, 빛, 취급 등에 영향을 받는다.
지나치게 건조한 환경에서는 유연성이 떨어지고 뻣뻣해질 수 있다.
책을 반복해서 열고 닫는 조인트에서는 가죽이 계속 굽혀진다.
5번째 글에서 살펴봤던 바로 그 부분이다.
이미 약해진 가죽이 이런 움직임을 반복하면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반면 레드 로트가 심한 가죽에서는 표면 자체가 분말처럼 약해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책을 꺼낸 자리에 붉은 갈색 가루가 떨어져 있거나, 만진 손에 고운 가루가 계속 묻는다면 단순한 마모와는 다른 상태를 의심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 보고 집에서 정확한 원인을 진단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가루가 생기는 가죽을 계속 문지르고 닦는 행동을 피하는 것이다.
가죽이 말랐다면 기름을 발라주면 되지 않을까?
여기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가죽 구두나 가죽가방은 가죽크림이나 오일을 바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오래된 가죽책에도 뭔가 발라주면 다시 촉촉하고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과거에는 실제로 오래된 책에도 이른바 **레더 드레싱(Leather dressing)**을 사용하는 일이 있었다.
기름이나 왁스 성분을 가죽에 발라 유연하게 만들려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현재 Library of Congress와 CCI는 역사적인 가죽 장정에 이런 오일이나 왁스를 임의로 바르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부드러워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일 성분이 산화해 가죽을 더 뻣뻣하게 만들 수도 있고, 표면을 어둡게 하거나 주변 재료에 얼룩을 남길 수도 있다.
먼지를 붙잡는 끈적한 표면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레드 로트가 진행된 가죽은 이미 구조 자체가 약해진 상태다.
단순히 ‘기름이 부족한 마른 가죽’으로 보면 안 된다.
그래서 손에 가루가 묻는다고 가죽크림부터 찾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말라 보인다는 것과 기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붉은 가루가 계속 묻는 책은 어떻게 보관할까?
가죽가루가 떨어지는 책을 다른 책 사이에 그대로 꽂아두면 조금 성가신 문제가 생긴다.
옆 책에 붉은 가루가 묻는다.
책을 꺼낼 때마다 손에도 묻고, 그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면 종이에도 옮겨갈 수 있다.
그래서 Library of Congress와 NEDCC는 레드 로트가 있는 책을 보존용 상자에 넣어 다른 자료와 분리하는 방법을 권한다.
자주 열어봐야 하는 책이라면 상황에 따라 폴리에스터 필름으로 만든 보호 재킷을 이용해 가루가 손과 종이로 이동하는 것을 줄이기도 한다.

여기서도 거창한 복원기술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보호다.
가루가 생기는 책을 더 많이 만지지 않는다.
옆 책과 마찰하지 않게 한다.
책등 윗부분을 잡아당겨 꺼내지 않는다.
무리하게 크게 펼치지 않는다.
필요하면 상자에 넣는다.
문제가 심하면 가죽과 책 보존을 다루는 전문가에게 상태를 확인받는다.
책을 당장 새것처럼 만드는 것보다 현재 남아 있는 가죽을 더 잃지 않는 것이 먼저다.
가죽 표지는 책을 꾸미기 위한 장식만이 아니다
오래된 가죽 장정 책을 보면 금박이나 장식무늬부터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가죽표지를 책의 외관을 꾸미는 재료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가죽은 책등과 표지를 감싸면서 책의 구조를 보호해온 재료이기도 하다.
수백 년 동안 손이 닿았고, 책장을 열 때마다 접혔고, 먼지와 빛과 공기에 노출됐다.
가죽 표면의 작은 균열이나 마모에는 그 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모든 흔적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닳은 것과, 구조적으로 갈라지고 있는 것, 표면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다음에 오래된 가죽책을 만나면 색이나 장식만 보지 않게 된다.
책등을 한번 살펴보고, 조인트를 보고, 그리고 손에 붉은 가루가 묻지는 않는지도 보게 된다.
오래된 가죽은 단순히 ‘낡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가죽은 수백 년을 버티고, 어떤 가죽은 천천히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오래된 책의 구조를 읽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REFERENCE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Basic Care of Books
Canadian Conservation Institute
Caring for Leather, Skin and Fur
Library of Congress
Preserving Your Books — Repairing Your Books
Library of Congress
Books — Preservation FAQ
Northeast Document Conservation Center
Storage and Handling for Books and Artifacts on Paper
voucher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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